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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 - 꿈 버리지 않아 2

조영미 | 2008.03.01 22:16 | 공감 0 | 비공감 0

-어떻게 노르웨이에서 라면 사업을 하게 됐나.


요리사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어느 고국이 그리워서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그런데 서울 뒷골목에 다니다 우연히 들어간 분식집에서 생애 최고의 라면을 만났다.

 

, 이렇게 맛있으면 노르웨이에서도 통하겠다싶었다.

언젠가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50대가 80년대에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
노르웨이에선미스터 상표의 라면이 일본 라면을 제치고

시장의 80% 차지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성공시켰나.


별거 없다. 되리라는 믿음과 되게 하겠다는 노력뿐이었다
.”


-
노르웨이어는 물론 영어·프랑스어는 물론 독일어까지 유창하다고 들었다
.


영어는 어려서 미군부대에서 일하면서 배웠고, 프랑스어는 아까 말했듯이

스위스에서 연수를 했다. 독일어를 배운 것은 사랑 때문이다.

독일 여성과 9 동안 펜팔을 하면서 익혔다.

 

그녀가 부모님을 모시고 노르웨이로 휴가를 왔을

처음 만났는데 한눈에 반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당시 동행까지 했다. 속이 탔지만 어려서 한국에서

 

어르신께서 하신여성의 마음을 잡으려면 부모에게 하라

말이 생각나서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얼마 그녀가약혼자와 헤어졌다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사람이 나의 아내 안네리제다.

 

84 세상을 떠났다. 아냐(41)·소냐(37)·이리나(32) 딸을 뒀는데

각각 의사·요리사·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모두 결혼해서 살고 있다.

나는 딸들이 하도 성화를 한국 여성과 재혼했다.”


-‘
리틀 노르웨이’‘리틀 코리아사업은 어떤 것인가
.


노르웨이촌, 한국촌을 만들어 한국과 노르웨이의 상호이해와 교류를 촉진하는 일이다.

인천에서리틀 노르웨이 타운건설 사업에 착수했는데, 우선 노르웨이 근해에서 잡은

연어·대구·고등어·골뱅이를 가져와 보관하는 냉동창고 사업부터 하고 있다.

 

노르웨이가 중국 칭따오에 창고를 개설하려던 것을 인천으로 돌렸다.

한국 사업가들이 우물쭈물하다 좋은 해산물을 일본인에게 놓치는 경우를 봤기 때문이다.

일본 상인들은 좋은 물건이면 돈을 얹어주고 사들인다.

 

안타까운 마음에 사업을 하게 됐다.

앞으로 노르웨이에서리틀 코리아 시작할 예정이다.”


-
소원이 있다면
.


나를 낳아준 곳은 한국이고 나를 길러준 곳은 노르웨이다.

나라 모두 나의 고국이다. 여생을 고국을 위해 바치고 싶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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