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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즉시공(業卽是空)

no1 | 2007.01.03 08:07 | 공감 0 | 비공감 0


업즉시공(業卽是空)





십우도(十牛圖)




불성(佛性)이 빛나면...





색즉시공(色卽是空)=업즉시공(業卽是空)






불교에 십우도(十牛圖)라는 것이 있어요.

소가 있고 목동이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소`는 인간의 욕망이나

에고(ego)와 같은...

어둠의 거품 들이고
,


`목동`은 `소`를 다루는 주인이죠.

사람으로 비유하면...

참 근원,

빛의 존재,

사랑이나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인

영혼의 태양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소`는 인간의 밖에 있는,

다른 자기로 착각하고 있는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은

`소`를 자기 자신으로 보고 있어요.


이 `소`는 초기에 길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망아지 뛰듯이 합니다.


그럴때 그 안에 있는...

참 영혼의 태양, 빛의 존재인



`목동`이 의도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게 자기자신이 반응해요.

초기에 태어나서는 망아지 뛰듯해서 컨트롤이 되질 않아요.


안의 목소리와 밖의 목소리가 전혀 조화가 안돼요.


그러다가 코뚜레도 뚫고, 크면서 회초리로 맞기도 하면서,

밖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서,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일체의 어둠을 내면의 빛에 의해서

어둠으로 보고 존재성 자체도 인정을 안 하니까


밖에 있는 `소`의 존재도 인정을 하지 않는 거예요.



욕망과 에고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면

우리는 신속하고 빠르게 어둠은 없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

니다.


그러다가...

`소`가 어느 정도 길이 들면

“이랴" ~

소리만 해도 `목동의 목소리...

내면의 목소리, 빛의 존재의 목소리, 근원의 목소리

에따라서


”이랴“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고 한다고...

그렇게 가다보면 `소`가 길들여져요.


안에 있는 목소리와 밖에 있는 목소리가 조율이 되는 거예

요.

더 진전이 되면 안에 있는 목소리는 곧 밖에 있는 목소

가 되요.


이제는 안에서 무슨 소리를 하면, 밖에서는 안의 목소리

의 의중에 따라서
자동으로 움직여져요...


그러면 에고라는 `소`는 없어지고 빛만이 존재합니다.


빛의 근원인 빛의 존재성 만이 남게 되요.


빛의 의도에 따라,

우주 근원의 섭리에 따라...

우주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창조하는 과정이 불교의 과정하고 다르지 않아요.


우리 안에 있는 창조의 근원, 창조의 의지를

영혼의 태양이 자연스럽게 발현시키게 되고,

발현됨에 따라서는 일체의 어둠인 에고나,

다양한 어둠의 먹구름, 분노, 불안등

잡다한 문제의 근원들은 일체의 어둠일
뿐이요,


아무 존재성이 없고, 사라지고 나면은 빛으로 선택하고,

충돌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데로 창조해 낼 수 있어요.



불교의 반야심경으로 표현 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불성(佛性)이

`목동`일 수도 있고,


밖에 있는 `색`으로 등장하는

일체의 업이라든가,


삶의 업장들은 어둠으로 볼수 있어요.


그래서 불성이 빛나면...



색즉시공(色卽是空)
이라고



색(色)으로 보여졌던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



(空)이 되고...



오직 빛만이...


즉 불성(佛性)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하던 우리는 안으로부터

창조하는 시기에 도달해서 그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충돌이라는 것은 충돌 지수의 차원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으로 뛰어가서 문제를 지우고...

과감하게 빛의 근원, 창조의 근원, 사랑의 근원인

거대한 빛의 바다에서 사랑의 영혼의 태양이 떠오르고,

그러한 빛의 도구인 우리의 존재를 통해서

빛이 발현됨으로서 일체의 어둠의 먹구름은

없는 걸로 그냥 사라집니다.


어둠이 상(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발현되면 순간에서 이루어 져야 합니다.

순간에 선택할 때...

분노의 대상이 느껴지면,

이 분노는 내 안에 있다고 지우고,

최고의 믿음과 신뢰와 감사의 존재로 선택을 해줘야 합니다.


최악의 존재를 최고의 최선의 상황으로...

선택하고 창조해 낼 수 있어야만

우리 안에 있는 빛의 근원과 일치되는

그러한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 코스모피아의 과정도

그와 유사했던 것 같아요.

안에 있었던 부분이 밖으로 계속 발현이 되면 될 수록,

창조의 과정도 힘들어요.


결국은 밖에 있는 존재를 자신의 참모습으로,

마치 망아지 뛰듯이 하는 것을 자신의
참자아로

착각을 할때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불교의 십우도와 비유해도 우리 쪽과 거의 다르지 않을 거예요.



/mir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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