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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1 창조의 원리 (2001. 11 기본프로그램)

코스모피아 | 2001.12.04 13:12 | 공감 0 | 비공감 0
오늘 창조 원리 부문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예기를 하겠읍니다.

창조하면 거창한게 창조가 아니예요.
일단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부터가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창조가 진행되는 과정은 느끼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가령 무언가를 느낀다. 어떤 분노를 느낀다.
증오를 느낀다. 감사를 느낀다. 사랑을 느낀다.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그것을 느끼는 주체에서
느끼는 대상으로 주의와 관심이 집중된다는 얘깁니다.

뭔가를 느낀다는 얘기는,
가령 분노를 느낀다는 것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지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느끼는 주체로부터
느끼는 대상, 분노이든 사랑이든 느끼는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주의와 관심이 에너지화 되어 흘러간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자기자신의 주의와 관심이 어떤 대상으로 흘러간다는
얘기는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고, 창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느낌에는 의식적인 느낌 외에도 무의식적인 느낌이 많아요.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느끼느냐가 진정한 창조나
운명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읍니다.
무의식적으로 무언가에 대해서 느낌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TV를 보다가 갑자기 "저놈들 때문에 그렇다고" 분노한다든지,
학생 같은 경우 집에 있는데 부모님이 "너 왜 공부 안해" 했을때
안에서 막 치솟는 것을 느낄 때. 자기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창조해요.

그래서 의식적인 창조보다 무의식적인 창조가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느낀다는 얘기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무의식속에 집어 넣으려고 많이 노력했던
사랑의 빛, 생명의 빛, 감사의 빛, 풍요의 빛, 은혜의 빛,
지혜의 빛 같은 이런것은,

무의식 속에 그런 정보를 집어 넣음으로 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느끼도록 하고 무의식적으로
주변의 시공간을 풍요롭고 사랍스럽고 생명력으로
창조하고저 하는 겁니다.

주변을 무의식적으로 창조한다는 얘기는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파동의 에너지를 나타낸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파동이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가 다가올수 밖에 없어요.

무의식적으로 사랑이나 생명...
감사나 풍요, 지성, 지혜같은 것을 느끼고 체험하고
있다는 얘기는 그런 식의 시공간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그와 대립되는 불평, 불만이란게 있다 해도
그 어둠은 없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확인해 줄 뿐이고,
주변의 시공간과 충돌할 리도 없어요.

충돌하지 않고 주변의 시공간을 의도한 바대로 창조할 수 있어요.
무의식적인 영역에 어떤 정보의 씨앗,
그러한 마인드를 입력을 한다는 얘기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의 시공간을 인지하고, 느끼고 체험한다는 얘기예요.

무의식적인 시공간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대상으로 시공간으로 에너지를 흘러보낼수 있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창조하려면
무의식적인 영역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어야 해요.
그런 시공간 영역속의 느낌을 가질수 있게 된다면
엄청난 시공간 창조의 계기가 되리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주로 했던 것이 무의식적인 영역에
우리의 씨앗을, 사랑의 씨앗, 생명의 씨앗, 믿음의 씨앗,
풍요의 씨앗, 감사의 씨앗, 지혜의 씨앗을 뿌렸어요.

그 씨앗을 뿌리면 그것이 자라서 믿음의 나무,
생명의 나무, 사랑의 나무로 자라
사랑의 열매, 지혜의 열매를 거둘 수 있어요.

시공간은 이런 식으로 창조된다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주의와 에너지가 시공간 쪽으로
연결되는것을 의미합니다.

흔히 제일 무서운 것은 무의식 적으로 좌절을 느낀다거나
실망, 실패, 분노, 증오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인
시공간에 들어 있을때 그런 어둠의 정보가
어둠의 거품이 들어있을때 심각해 져요.

그런 영역들이 주류를 이루면 삶이 꼭 꼬이는 쪽으로 간다고요.
앞으로 넘어져도 뒤를 다치고, 결국 우연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씨앗을 뿌렸기 때문에...

그런 씨앗이 들어 있는 이 부분을 지우지 않고서는 안되요.
이런 어둠 같은 부분을 지우는 작업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부분입니다.
그래서 무의식, 습관 속에 두려움, 불만, 불안, 불신
이런 것들이 가득히 있으면 아주 위험하기 그지 없어요.

그래서 특정한 대상을 만나도 감사의 대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만의 대상, 불편의 대상으로 느끼게 되요.
TV를 봐도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막 흥분하고 분노하고,

안에 있었던 파일이 그냥 자연스럽게 튀면서 에너지를
더욱 더 집중적으로 공급하는 현상이 발생해요.
그래서 이제는 그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자기 안의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는 파일(정보)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 안으로부터 이어지는 그 부분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끌어내야 해요.
또한 생각은 창조에 크게 보탬이 되는게 아녀요.

흐름을 막아요.
생각을 하면 알갱이가 되고, 의식이 물질화가 되요.
마치 물이 흐르는데 돌을 집어 넣는 것과 같아요.

자연스럽게 풍요를 느끼고 가면 풍요가 창조되는데
근심스런 생각을 하면 창조로 가는 에너지의 흐름이 끊어져요.

예를들어 귤을 보고 신맛에서 부터 진하게 느낌을 느끼는데,
"귤 이거 맛있어?" "귤 시어?" 하면 느낌이 딱 끊어져요.
특히 뭔가 느끼다가 엉뚱한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잖아요.

그럼 생각 덩어리들이 물질화되어 있어가지고
주변의 에너지를 끌어 들여요.
"저게 될까?" 하고 걱정하고 있으면 걱정하는 데로
에너지가 흡수되어 가요.

진짜 써야 할데로 에너지가 못가는 거예요.
에너지가 안가고 엉뚱한 곳으로 가니까 창조가 안되죠.
역창조가 되는 거예요.

맨날 머리속으로 생각하는게 생각이거든요,
창조는 머리로 하는게 아니예요.
머리로 창조하려고 하면 판단과 생각이 막 떠오르고

그러면은 의식의 덩어리들 때문에 흐름이 막혀가지고
엉뚱한 곳으로 가요.
그래서 생각이나 잡념이 막 떠오르면 그것은
창조하는게 아니라 역창조 하는 거예요.

그런 것은 일체 어둠으로 봐야 되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말고
어둠으로 보고, 그러면서 곧 바로 자기안에 있는
사랑이나 생명,지혜 등 자기 안의 빛으로 의식의 중심을
이동시켜야 합니다.

단, 우선 건물을 지을 때는 머리로 해요.
디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의 실제적인 창조의 과정은
가슴과 영혼의 FEEL로 진행이 되야 해요.

머리로 생각하다가는 입자화 되어 가지고 가지도 못해요.
가다가 끝나 버려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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