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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2. 대리믿음 효과 - 커뮤니케이션 (제 66차 영적경영)

코스모피아 | 2009.02.03 20:28 | 공감 0 | 비공감 0
무조건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부분은 아니예요.
우리가 믿음수련 전에 무한책임이라고 책임수련을 했습니다.
책임수련이라고 한다면 아마 호오포노포노 책을 읽어보신 분은 알거예요.
세상에 눈에 보이거나 다가오거나 들리거나 잡혀지는 세상의 모든 것은 전부다 나의 책임이다..
무한책임이다..심지어는 신문에 났던 그런 사건조차도 나의 책임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의 무한책임이다라는 무한책임수련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난 것은 하나의 생각의 틀, 그 사람이 과거로부터 선택해가지고 이루어진 내적인 생각의 틀..
이것을 다른식으로 말하면 매트릭스라고 합니다.
운명의 매트릭스같이 자신의 매트릭스라고 하는게 한번 생성이 되면
세상의 모든것을 필터링해 가지고 다 받아들입니다.
필터링을 하는 사람들, 특히 논리적으로 벌써 질문하거나 말하거나 할 때
이미 벌써 필터링을 하기 때문에 결론이 나와 있어요.
묻기전에 나와 있고 자기가 묻는 것을 합리화하는 수준입니다.
이런 매트릭스의 틀을 가진 사람이 어떤 걸 갖다가 한번 해보라고 얘기하거나
믿으라고 하면 자기 필요한 부분만 필터링해서 믿고 그외에는 전부다 리젝트를 합니다.
이 매트릭스라고 하는게 어찌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자 운명이자 하나의 틀입니다.
이 틀을 가진 사람, 특히 머리로 분석하고 판단하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있어서의 어떤 매트릭스의 구조는 참 대단합니다.
우리 뒤에 믿음의 시대에 오신 님들은 워낙 쉽게 붕괴가 되가지고 너무나 수월하기 때문에 좀 덜한데요.
불과 우리가 속청기법, 속송기법, GHSR이니 이런것을 통해가지고
매트릭스의 벽을 깨기 위해서 무지 노력을 했습니다.
이걸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 있는 매트릭스는 거의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더라는 거죠.
큰 틀은 서 있고 자기 기존의 논리적인 틀을 합리화하는 수준에서 조금 진화되더라는 거죠.
조금 부드러워지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무한책임론으로써는 믿음을 형성하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이걸가지고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건 쉽지 않아요.
그러나 무한책임론을 받아들이면 적어도 대화는 되더라는 겁니다.
대화가 되기 시작을 해요.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거 하나는 무한책임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전제가 믿음이 있어야만 책임을 받아들이는데
이론상으로는 내가 책임을 져야 된다고 하지만 마음속 안에서는
웃기는 소리 하지마..내가 무슨 책임이냐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무한책임론을 받아들이려고 하면 참 이게 쉽지가 않아요.
이제까지 부부관계에 있어서, 직장에서 상하관계에 있어서, 부모관계에 있어서
저사람이 문제고 저 사람이 변해야된다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전부 다 내 책임이다라고 이걸 받아들이려면
스스로에 대한, 보여지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무한책임을 논하니까 결국 무한책임론이라는 것도
자신이 기존에 여지까지 해왔던 매트릭스의 벽은 깨지 못하더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건 마치 어떤 소리냐면 시크릿이라는 책을 보면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으면 원하는 일이 일어난다..
내용상으로 봐서는 아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가장 수월하게 설명이 됐습니다.
그런데 하다보면 원하는 게 집중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 지나고 보면 원치 않는 것에 집중을 하고 있더라는 거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무한책임론을 받아들여서 무한책임이라고 받아들이려 하는데
조금만 들어가다 보면 내 책임이 아니라 상대편 책임, 세상책임이더라는 겁니다.
이렇게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에 집중한다던가 린 그라본 책과 같이 이미 실현 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들이 이론상으로는 맞는데 하다보면 되질 않아요.
어떤 실현 된 꿈에 믿음이 더해지면 우리 안에서는 이미 실현 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이 받아들이는 부분이 믿음이 없으면 어떤 형태로 등장하느냐면
<어떻게, 왜> 꿈에 도달하는가로 포커스가 이동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왜>의 장애물에만 도달합니다.
그러다보면 마음이 실현된 꿈, 원하는 것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집중하다보면 내가 어떻게 저 꿈을 달성할 수 있지? 어떤 방식으로 하지?
자꾸 < 어떻게,왜>하는 문제 부분에 제동이 걸려가지고 대부분 원치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나곤 합니다.
믿음은 실현 된 꿈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는 그 자체지 <어떻게, 왜>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왜> 도달하느냐는 없습니다.
우리 영준님이 오늘 면접보고 왔는데 <어떻게, 왜>를 가지고 면접보지는 않았을거예요.
거기 갔을 때 이미 실현 된 꿈으로 받아들였다면 과정은 초스피드로 일어나잖아요.
면접보러 간 사람이 회식까지 하고 오는 경우는 여지까지 처음인 것 같아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결과, 실현 된 꿈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 왜>는 필요가 없는거예요.
<어떻게, 왜>를 구상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어요.
왜냐 <어떻게, 왜>는 그 절차와 과정을 거친다라고 하면 그 절차와 과정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거든요.
꿈에 이르는 길은 무한히 다양한 길이 존재하는데 매트릭스 틀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왜>라고 틀을 딱 고정시켜 놉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당신의 능력은 발휘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저희가 매트릭스의 벽을 깨는 부분을 터득을 했습니다.
매트릭스를 깨는 부분을 하기 전에 무한책임에 관해서 저희 노래가 나왔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대와의 인연> 이 나왔는데
<용서해 주세요>부분에다 내가 창조한 것 부분에 대리믿음이 등장한 이후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48페이지 뒤에 약식으로 나온 것을 보면 내 눈에 비친 누구..
가령 내 눈에 비친 범수님 내가 창조한 범수님 전부다 나의 책임 나의 무한책임.
이런식으로 상대편이나 눈에 보이는 대상에 대해서 이름을 집어넣어서 해봤습니다.
우리가 발전하게 된 동기를 처음오신 분들 계시니까 설명드리는 겁니다.
논리적으로 볼때 이 부분의 책임을 인정하려고 하면 문제되는 사람을 집어넣어야 되거든요.
그럼 가장 문제되는 사람이 누구냐..대부분보면 부부관계라든가 부모형제라든가 직장상사입니다.
제일 문제 되는 사람 이름..아빠일 수도 있고 때로는 엄마일 수도 있고..
여기에 이름을 집어넣어서 하면 이게 상당히 잘 될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자기 자신과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집어넣어서 용서해주세요를 부르니까
난리가 나는거예요. 안에서 전투를 하더라는 겁니다.
왜냐 무슨 용서냐..내가 아닌데..하면서 노래의 이론상은 반복해서 이게 녹아들어가면
저절로 용서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 사람에 대해서 용서가 되어야 하는데 용서가 아니라 안에서 에스컬레이터가 되는거예요.
막 화가 치솟는 거예요. 분노가 치솟고..
왜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변으로부터 분노가 일어나면서 분노 에너지를 끌어들이면서 오히려 상처를 긁는다고 하잖아요.
긁어서 부스럼만든다고 오히려 문제가 해결된다기 보다는 문제가 악화되는 이런 상황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매트릭스를 붕괴시키기 위해서 이 이론에 입각해서 부르면 해결이 되어야 될텐데
해결되기도 하지만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문제가 유발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걸 좀 바꿔 봤어요.
가장 부담이 안되는 존재의 이름을 갖다가 집어넣어서 불러보기 시작을 했어요.
그랬더니 기분도 좋아지고 부담이 현저히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으면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가 없는거예요 대개.
자기 자신도 여기 집어넣어서 부르면 굉장히 분노를 유발하시는 님들이 꽤 많다고 봐져요.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그게 되질 않아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이 머리로 생활한 사람이 여기다 어떤 이름을 집어넣은 들 되질 않아요.
그래서 대리믿음이 고안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세계를 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우상화라든가 이런 건 절대로 배격하고 제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가지고 있었더라면 옛날에 아마 코스모피아는 이상한 쪽으로 가다못해 난리가 났을거예요.
그래서 여기다가 제 이름을 집어넣어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때문에 스스로도 거부감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게 일시적인 도구로써는 한번 해볼 필요성이 있지 않느냐, 스스로를 믿기위한 도구로써는 상관이 없지 않느냐
그런 측면에서 제 이름을 집어넣어서 해보기를 도입을 했어요.
해보니까 여기에는 거부감이 현저히 적더라는 거죠.
하다보니까 재미난것은 특정한 대상이 많이 변하는게 아니라 부르는 사람이 대부분 변합니다.
80%정도는 부르는 주체가 변하고 20%정도가 상대편이 변하더라는 거죠.
아예 부담없는 존재를 넣어서 부르니까 이 때는 이제 아까 말씀드렸던
여지까지 살면서 형성되어 왔던 매트릭스 벽이 흔들리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또 이름을 집어넣어서 부르다 보니까 저 역시도 많이 성장했다고 보는게
과거 같으면 그렇게 집어넣으면 저는 영향 받아서 난리가 납니다. 쓰러져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라 그렇게 집어 넣어서 부르다 보니까
파장대가 인지가 되니까 조그만 의식으로도 상대편의 매트릭스 벽에 이제는 녹아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쉽게 컴퓨터로 말한다면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벽을 뚫고 들어갈수 있게 된것이죠.
매트릭스의 벽을 뚫는데 성공을 한 거예요.
실제로 해 보면 알아요. 도구니까요.
절대로 우상의 차원으로는 하지마시고 어느정도 겨자씨만한 믿음이형성될 때까지만이라도 해보세요.
그러다 보니까 매트릭스 벽의 부분에 들어가는데 성공하고 그 사람의 생각이나 틀에 틈이 벌어지고
그 속에 들어가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이제는 이름집어 넣어서 부르다 보니까 대리믿음이라는 개념이 수립이 됐어요.
어느정도 스스로 믿음이 형성되어서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자기가 해주고 싶은 사람 이름을 집어넣어서 하면
단 1,2분도 안돼서 몇 번만 해도 기분이 상당히 안좋아 집니다.
안좋아 질 때는 정지를 하고 다시 대리믿음을 통해서 제대로 갈때까지 해야돼요.
그런데 기분이 안좋은 상태에서는 전투를 하는거지 문제가 해결이 안돼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대리믿음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슴이 열리기 시작을 합니다.
초기에 대리믿음의 전단계에서는 이름을 집어넣는 단계였는데 코스모피아가 조금 더 진화를 했어요.
진화를 하다보니까 더 수월하게 하는 방법이 발견됐는데 노래도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냥 `하나다` 라는 부분만을 갖다가 반복적으로 하는 겁니다.
대리믿음을 형성하기 가장 편리한 도구가 `지호님과 하나다`라는 정도만 집중적으로 외치는 겁니다.
저 또한 코스모피아 님들에 대해서 나와 하나다라는 것을 이제는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도 모든 님들과 하나고 상대편도 하나다라고 외치기 시작을 하니까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하면 대리믿음으로써 겨자씨만한 믿음이 형성되기 시작을 하더라는 거죠.
그게 뭐냐하면 머리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하는 그 부분이 형성되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겨자씨만한 믿음이 형성될 때가 가장 힘들었고 형성이 되기 시작을 하면
믿음도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한다는 겁니다.
아마 처음오신 세분들 중에서도 믿음이 성장하는 부분을 오기전에도 해보셨으니까 알꺼예요.
어느정도 성장하는 건지.
믿음이 성장하기 시작을 하니까 제일 중요한 거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증가한다는 겁니다.
가장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또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증가합니다.
믿음이 증가하고 나니까 아주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전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도 집중력 제고는 물론이거니와 믿음이 있으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사람과 대화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이라고 하는것, 여지까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가지고
생각의 연쇄적인꼬리때문에 도대체 머리 돌아가느라고 일이 안됐는데
생각이 정지되기 시작을 하더라는 겁니다.
생각이 정지되기 시작을 하고 가슴으로 믿음으로 시작을 하니까
대화가 안되던 존재와 대화가 되기 시작을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슴이 열린다..마음과 영혼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이 부분이 되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하나다`라는 정도만 외쳐도 저 역시도 하나다라고 보고 있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찌보면 노래라고 하는 것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더라도 그냥 하나다라는 느낌속에서 하면
아마 기분이 전이되거나 다가오거나 변화되는 것을 쉽게 느낄수 있을겁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테마에서 겨자씨만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도 뒤에 오신 분들은 믿음이라서 훨씬 수월하게 왔는데
과거 우리 수행하신 님들을 보면은 쉬운 부분은 아니었어요.
지난 번에 참석했었던 양성진님은 거의 10년만에 와서
책 1권 나갈 때 정리하는데 일조하기도 했었던 양성진님이 있는데
그 분이 와서 하는 소리가 10년동안 자기는 머리에서부터 계속 전투하던게
여기오니까 한 번에 끝나버리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믿음으로 하니까 애엄마하고 대화가 되기 시작하더랍니다.
대화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머리로 대화하는 것은 대화도 아닙니다.
과거에 논리적이고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고 생각을 끊임없이 하던 사람들에게
이런 믿음이란 상당히 대단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엄청난 장애물이 그림자로 다가옵니다.
그저 그림자일 뿐입니다.
어찌보면 현상계에 보여지는 존재는 믿음에 의해서 창조된 하나의 그림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림자를 실체로 보고 그림자와 전투하려는 자는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스스로의 믿음을 확보하는 그런 단계까지는 대리믿음을 하시는게 나쁠것 같지는 않아요.
저 역시도 그런식으로 믿음을 확보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나서 그게 어느정도 되시면 대리믿음 중에서 조금더 확장을 시켜보시면 될겁니다.
그게 되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이나 석가와 하나다`를 해보셔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안됩니다.
어느정도 믿음의 수준이 올라가신 다음에는 그런 존재와 하나다라는 것도 스스로의 믿음수위가 올라가면 잘 됩니다.
그런 부분도 확대되어 가는 것이고 이런식으로 믿음 수위가 올라가면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선택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믿음부분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믿음은 거의 없다고 보여집니다.
이렇게 대리믿음이 형성 된 과정을 설명 드렸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이 있고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처음 오시면서 벌써 믿음이 형성되어서 어느정도 체험을 했기 때문에
아마 지금 얘기하는게 아..이런 식으로 도달했구나..하실수 있을 겁니다.
믿음이 형성되고 나서는 여지까지 가장 마음적으로 거슬리고 했던 부분들이 전부다 그림자로 보입니다.
그림자는 빛이 있으면 있다 사라지는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어둠이 깊어도 빛이 있으면 빛만 찬란히 빛날 뿐이라고요.
있다 사라지는 게 아니고 원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예요.
그림자와 전투할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것이 믿음시대에는 가장 큰 수확입니다.
그런 믿음이 스스로 형성되면 형성될수록 나는 누구인가..스스로에 대한 믿음이거든요.
그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나는 사랑하는 당신, 우리 안의 신성, 그리스도와 같은
나는 사랑하는 당신이다.나는 문이요 부활이요 생명이요 길이요.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나는 시작이요 끝이요 나는 무한풍요 무한지혜이다.
이런 스스로에 대한 믿음 또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믿음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르면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안에서 그냥 갈등이 시작이 됩니다.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안에 있는 노래 내용이 녹아들어가는 것은 아니예요.
그 보다는 대리믿음을 통해서든 어떻게 하든 실지적인 믿음이 형성되고 믿음이 자람에 따라
믿음이 있을 때 스스로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형성 안된 상태에서는 이론적으로는 알아요. 나는 신이라는 것을요.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적으로 실행력을 갖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그리고 조금더 요즘 사랑의샘 수련까지 진화를 했는데
사랑의샘 수련은 가슴으로 믿는게 아니라 아까같이 안에 더 내려가서
자궁쪽이나 배꼽아래에 있는 밑의 부분으로도 사랑의 샘 수련을 통해서
의식정보를 좀더 어떤 믿음을 통해서 녹이는 더 현실적인 부분으로 내려갔습니다.
머리를 쓰는 사람은 세상을 창조할 수 없지만 가슴과 배를 사용하는 사람은 세상을 창조 할 수 있습니다.
재미난 것은 뱃심좋은 사람이 일을 벌리고 일을 행하더라는 것이죠.
그런데 머리좋은 사람은 부딪히다 고민하다 시간을 다 보냅니다.
그래서 이제는 믿음의 시대에는 가슴과 배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불러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1월 30일 제66차 영적경영프로그램에서
miracles선생님의 말씀을 녹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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