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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석가 & 그대와 인연

김현선(포근한마음) | 2008.10.22 00:15 | 공감 0 | 비공감 0
코스모피아에서 최근 들어
No. 51... "그대와 인연"
통하여 반성과 참회와 용서를
무의식 프로그램에 깊숙이 입력하고 있는데
반성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한 글이 있어 책에서 옮겨보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기도의 참모습인데 세상 사람들은 기도를 소원으로 알고 있다.
신전이나 사찰에 가서 이렇게 해주시오, 저렇게 되게 해주시오 하면서 합장하고 있다.
그것은 구걸하는 짓이지 기도의 자세가 아니다.
 
올바른 생활 행위, 즉, 조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때에는 그 소원과 기도는 대개 달성된다.
올바른 기도는 차원이 다른 저 세상의 천사의 마음을 움직여 그 소원을 달성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천사와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기적은 이러한 기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염원은 목적의식이요 창조활동의 원천에 비해서 기도는 생명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마음이요 나아가서는 신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다 같이 에너지라는
힘의 파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공통적이다.
 
정정(正定)에 대하여 고타마는 생각하였다. 정정의 근본은 반성일 것이다.
반성은 광명 세계에 이르는 사닥다리다. 시기, 질투, 노여움, 비난, 험담 등의 마음을 버리고
집착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성하는 길밖에 없다.
 
반성을 거듭함으로써 마음과 육체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마음과 대우주의 마음과의 합일이 이루어진다. 반성을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
마라, 야챠, 아수라, 나가 등에 지배되어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정정(正定)은 바로 반성이라는 지관(止觀)의 행위인 것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과정은 마음의 내면에 대한 반성이다.
대자연의 섭리에 비추어 보고 사물을 보는 법, 사고방식,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거기
따른 행동이 과연 옳았던가를 깊이 반성하는 것이 결정적 열쇠가 된다.
 
그래서 옳지 않은 면이 드러나면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고타마는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함으로써 마음의 구름을 차례차례 하나씩 걷어 냈다.
36년간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 한 가지씩 흑백을 가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흑백을 가리기 위해서는 중도의 척도로써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에게 편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는 반성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반성이라는 것이
엄정하면 엄정할수록 어리석은 자신이 더욱 드러났다. 남에게 말할 수도 없다.
 
반성으로 잘못이 인정되었다 해서 그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바로잡아 가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성의 공덕은 반성 후의
중도의 실천에 달려있다. 반성의 공덕은 우선 심신의 조화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고타마는 36년간의 과거를 반성하고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깨달음의 폭과 내용을 더욱 충실한 것으로 키워가게 된다.
명상은 단순히 무상(無想)의 경지에 드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때를 그대로 둔 채 무상에 들면
마음의 때에 상응한 부조화한 결과를 초래한다. 일이나 염불에 무아지경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무상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반성을 깊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다.
나머지 제자들도 코스타니야 처럼 과거의 죄를 하나하나 반성하고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두번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이튿날 저녁 무렵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첫날보다 더 밝아졌다.
동시에 그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후광의 양도 많아졌으며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음의 때와 녹의 일부분이 벗겨진 그 틈새로 광명이 흘러들었던 것이다.
 
후광의 양은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에 비례한다.
조화도는 반성에 대한 노력, 겸손한 태도에서 우선 이루어진다.
어떠한 보석이라도 외부의 힘에 의해서 갈고 닦지 않으면 속의 광채는 빛나지 않는다.
 
우리들의 상념과 행위도 중도라는 법에 따른 생활의 되풀이로 말미암아 후광의 광량이 달라진다.
다섯제자는 붓다를 둘러싸고 간밤의 반성의 진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만은 그 자리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붓다의 자비의 광명에 젖어버린 것이다.
 
도를 구하는 자의 마음은 어린이처럼 아름답고 싱싱하다.
할수만 있다면 당장에 신의 영광을 내려 인간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지만 정법의 길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노력, 용기, 지혜에 의해서 체득되는 것이지 결코 남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으로부터 평등하게 그 지혜를 부여받아 스스로 깨달아 갈 수 있도록 틀이 짜여 있다.
 
자비의 빛은 달빛처럼 길을 밝혀줄 수 있지만 길을 걷는 나그네는 아닌 것이다.
나그네 자신의 마음만이 무명(無明)을 헤매느냐, 아니면
깨달음의 피안에 이르느냐 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그들 다섯은 붓다의 지도를 받으며 선정(禪定)의 마음을 붙들고
반성의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닷새째 날이 되자 강직한 코스타니야가 맨 먼저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전생윤회의 과정을 깨달았으며 전생에서도 붓다의 가르침을 배워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하였다는 기억을 과거세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과 사명에 눈 뜨고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다.
아라한 제 1 호의 탄생이었다.
 
엿새째 날엔 아사지가 마음의 문을 열었다. 잇달아 밧데야가 그 경지에 이르러
고대 인도어를 말하기 시작했으며 그 법열이 붓다의 가슴에 와 닿았다.
남은 것은 우파가와 나아만 둘 뿐이었는데 이 두 사람도 이랫째 날엔 기근이 정리되고
역시 아라한이 되었다.
 
이와 같이 최초의 제자 다섯은 일 주일 동안의 반성과 실천으로 마음의 문이 열려
붓다의 제자다운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석가 중에서
-다까하시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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