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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고진의 과학사상과 생애

안영준 | 2007.04.16 10:55 | 공감 0 | 비공감 0
[집중탐구] 프리고진의 과학사상과 생애

 

20세기 과학혁명 촉발시킨 ‘열역학의 시인’

2003년 5월 28일, 197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열역학의 시인’이라 불리던 벨기에의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 세상을 떠났다. 열역학 뿐 아니라 과학 사상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 학자의 삶과 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벨기에의 화학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 1917~2003)은 비평형 통계역학자로서 수많은 저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과학사상가이다. 프리고진의 과학사상은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er Out of Chaos)’라는 말이 잘 대변하고 있다. 그는 질서와 무질서, 평형과 비평형, 우연과 필연, 가역성과 비가역성의 관계를 이해하고, 비평형과 비가역성으로부터 질서의 근원과 시간의 화살을 찾고자 하였다.

시간의 화살 찾는 끝없는 탐구

프리고진은 저서와 한국 방문을 통하여 오래 전부터 많은 국내 물리학자, 화학자, 과학사상가들에게 폭넓게 영향력을 미쳐왔다. 특히 그의 저서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는 국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김용운 고려대 명예 교수는 당시 이 책을 어렵게 구해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도올 김용옥, 고 조순탁 한국과학원 전 원장 등과 이 책을 공부하는 모임을 가졌고, 이 모임은 추후 ‘과학사상 연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사상과 저서의 번역 소개는 1985년 ‘신과학연구회’ 구성 등 국내의 ‘신과학’ 운동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필자도 미국 유학중인 1980년대 중반 그의 저서와 세계를 처음 접하고 엄청난 충격을 겪고, 현재의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1997년 그를 포항공대 <아운강좌>에 초청하여 그와 함께 했던 며칠간은 나를 비롯한 포항공대 참석자들에게 큰 지적 감동의 순간이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혁명 발발 직전인 1917년 1월 25일 항공기사인 아버지와 모스크바 음악원출신 어머니의 둘째 아들로서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기에 휘말려 가족을 따라 리투아니아, 베를린을 전전하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 정착했다. 전쟁으로 얼룩진 유럽에서의 불안 속에서도 어머니 줄리아의 철저한 자녀 교육하에서 어린 프리고진은 피아니스트로의 꿈을 키웠다. 그는 아테네 중학교에 들어간 후 고전과 고고학 문학 및 철학 서적을 섭렵하였는데 특히 ‘흐름의 철학’인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은 성장하는 일리야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법률가의 길을 가기 위해 범죄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우연하게 화학에 대한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되어, 브뤼셀 자유대학 화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평소 물리와 화학에서의 시간의 대칭성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던 중 대학 4학년 때 그는 시간의 특별한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열역학을 연구하기로 결정하고 드 동데르 교수 밑에서 열역학 연구를 수행하여 1941년 ‘비가역 현상에 관한 열역학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리고진은 1951년 이후 2003년 5월 타계할 때까지 브뤼셀 자유대학 교수와 오스틴 소재 미국 텍사스대학교의 물리 및 화학공학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1959년 브뤼셀 자유대학의 국제 솔베이 연구소, 1967년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에 통계역학과 복잡계 연구센터를 각각 설립하여 소장으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그는 비평형 계에서의 비가역 과정의 열역학과 자연과학에서의 시간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비평형 열역학, 특히 소산구조 이론에 대한 연구업적으로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프리고진이 1979년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이사벨 스텐저스와 함께 저술한 ‘새로운 연합’은 곤충학에서부터 문학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을 일으켜왔다. 이 책은 그저 평범한 또 하나의 책이 아니라 과학 그 자체를 변화시키고, 그 목적과 방법론, 인식론, 그리고 그 세계관을 다시 조명해보게 하는 지렛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 외 그는 ‘있음에서 됨으로’, ‘시간의 탄생’, ‘복잡성의 탐구’, ‘시간과 영원 사이’, ‘시간의 패러독스’, ‘카오스의 법칙’, ‘필연의 종말’ 등 수많은 책을 저술하여 그의 사상에 대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그는 일련의 책에서 뉴턴의 궤적, 결정론적 카오스에서 출발하여 양자 이론의 통일된 기술,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비가역성, 대폭발과 시간의 흐름을 확률론적 세계와 자기조직화에 기초한 일관된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조명하고 확실성의 종말이 새로운 과학과 문화의 창출의 시발점임을 주창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학 전반에 걸친 방대한 지적 유산

프리고진은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개의 문화를 접목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웅이었다. 그의 패러다임은 라플라스의 극단적 기계론적 사고를 넘어 오늘날 사회적 변화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무질서, 불안정성, 다양성, 비평형성, 비선형성과 같은 실재적 현상들에 주의를 돌리는 학문간 영역을 넘나드는 포스트 모던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었다. 또한 그의 과학사상은 전체적으로 비결정론적, 유기체적, 생태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자연을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동양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프리고진은 존재 그 자체를 시간과 독립된 것이 아니라, 혼돈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본질이 발현된다고 보고 있으며, 동양 사상뿐만이 아니라 칸트, 헤겔, 베르그송, 화이트헤드, 하이데거 등의 서구 철학에서 자신의 사상의 원류를 찾고 있다.

이제 프리고진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복잡성의 과학 유산은 모든 과학 기술 분야에서 인문사회과학에 이르기까지 직간접적인 파장을 미치고 있다. 프리고진과 그가 촉발한 과학 혁명이 21세기 과학사에서 어떻게 자리매김을 하게 될 지 자못 궁금하다.



김승환 / 포항공대 물리 교수

열역학의 시인 일리아 프리고진 타계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대화의 장 마련
| 글 | 신국조/서울대 화학부 교수ㆍstatchem@plaza.snu.ac.kr |
1977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그리고 16개 국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인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의 저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 그가 2003년 5월 28일 86세를 일기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운명했다.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해보자.

어린 시절 꿈은 피아니스트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리야 프리고진. 그의 어린 시절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프리고진은 1917년 1월 25일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화공기사이며 공장주인 로만 프리고진과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의 줄리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때는 러시아 혁명의 발발을 9개월 앞둔 어지러운 시기였다. 프리고진의 가족은 새로운 소비에트 정부의 사유재산에 대한 제한을 피해 1921년 모스크바를 떠나 리투아니아에서 1년을 지내고 베를린에 정착했다.

그러나 당시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라 극심한 인플레와 사회적인 불안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줄리아는 이런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어린 일리아 형제들에게 그녀가 자랄 때 받았던 수준 높은 교육을 전수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어린 형제에게 음악을 가르쳐서 프리고진은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피아노 악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후에 바하, 모차르트, 슈만, 드뷔시 등의 작품을 연주할 수 있게 된다.

베를린에서의 사업도 여의치 않고 때마침 불어닥친 나치주의자들의 열풍을 피해 프리고진의 가족은 다시 브뤼셀로 이주한다. 열살 때부터 벨기에에서 자란 프리고진은 고전교과목의 엄격한 교육으로 이름난 아테네 중학교에 들어간다. 어릴 때부터 배운 피아노를 계속하며 장래에 피아노 연주자가 될 꿈을 꾸던 일리아는 이 학교에서 점차 고전과 고고학, 문학, 그리고 철학 서적 등을 탐독한다.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은 ‘창조적 진화’에 기술된 과학이론에서의 시간과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시간과의 차이에 대한 앙리 베르그송의 사상이었다.

화학과 물리학 전공
열일곱살 되던 해 그의 가족은 프리고진의 장래를 법률가로 결정했다. 법률 공부의 첫걸음은 범죄자들의 정신상태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 프리고진은 범죄심리학에 관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뇌의 화학적 조성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이로부터 그는 화학에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됐고 마침내 브뤼셀의 자유대학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한다.

대학 4학년이 되던 해 그는 교내 음악 콩쿠르에서 슈만의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해 우승한다. 한편 드 동데르 교수의 지도하에 열역학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39년 화학과 물리학에서 동시에 학위를 받으며 학부를 졸업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41년 ‘비가역 현상에 관한 열역학적 연구’라는 제목의 학위논문으로 브뤼셀 자유대학에서 박사학위(화학)를 취득했다. 그 후 그는 은퇴할 때까지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총각 교수 시절 초청강연을 위해 폴란드를 방문한 그는 공항에 마중 나왔던 미모의 여학생 마리나 프로코비츠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1961년 그녀와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프리고진은 브뤼셀 자유대학뿐 아니라 여러 연구소와 대학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1959년부터 그는 솔베이 학술대회로 유명한 솔베이 재단에서 1912년 설립한 ‘국제 물리 및 화학연구소’의 소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1967년부터는 미국 오스틴의 텍사스 대학에서도 물리학 및 화학공학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이곳에서 ‘통계역학 센터’를 설립해 소장이 됐다. 훗날 텍사스 대학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연구소의 이름을 ‘통계역학과 복잡한 계에 관한 연구를 위한 일리아 프리고진 센터’로 개명했다.

이와 아울러 프리고진은 1987년부터 프랑스 사회과학 대학원의 연구소장직도 맡은 바 있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활약해온 프리고진의 주변에는 그의 학문을 추종하는 수십명의 학자들이 모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브뤼셀학파’가 형성됐다.

생명현상과 카오스 속 질서의 실마리
프리고진은 종래의 열역학 제2법칙에 반기를 들었다. 기존 법칙은 우주의 종말을 예언했다. 하지만 프리고진은 생명체가 무질서한 환경(카오스)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엔트로피를 무산시킨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1977년 그가 수상한 노벨 화학상은 ‘비평형 열역학과 무산구조에 관한 그의 업적’에 대한 것이다.

종래의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자발적인 과정에 대해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하며 이는 우주의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해석돼 왔다. 이 법칙은 우주가 모든 유용한 에너지를 무질서한 운동과 더불어 소진해버리는 ‘열적인 죽음’(heat death)을 향해 무거운 행진을 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주의 종말이 닥치리라는 암울한 예언을 한다.

프리고진은 과감하게 이러한 예언에 도전했다. 열역학적 평형상태는 자연에서 매우 희귀한 현상이고 대부분은 비평형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불안정한 비평형 상태에서 미시적인 요동의 효과로 거시적인 안정한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제안했다. 이때 나타나는 안정한 구조를 그는 ‘무산구조’(dissipative structure)라고 명명했으며, 이러한 과정을 ‘자생적 조직화’(self-organization)라고 불렀다. 가장 극적인 무산구조의 예는 바로 생명체이기도 하며 이러한 무산구조는 무질서한 주위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이며 대신 엔트로피를 ‘무산’시킨다는 것이다. 무산구조와 자기조직화는 바로 카오스로부터 질서를 가져다주는 메커니즘이자 생명현상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마련해줬다.
프리고진은 이러한 제안을 가상적인 화학반응계인 ‘브뤼셀레이터’(Brusselator)를 통해 수식화했다.

그리고 생체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화학반응들에 적용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의 제안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은 옛소련의 과학자 벨루소프와 자보틴스키가 발견한 새로운 화학반응을 통해서다. 말론산, 브롬산 이온, 세륨 이온을 묽은 황산용액 속에 넣고 화학반응을 시킬 때 어떤 온도에 이르면 용액이 갈라지는 현상(분기, 分岐)이 일어나고 복잡한 구조가 생성되는 것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벨루소프-자보틴스키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오레건 대학의 과학자들은 프리고진의 이론을 따라 ‘오레고네이터’(Oregonator)라는 화학반응 모델을 세웠다. 이 모델을 통해 이 새로운 화학반응을 성공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마침내 프리고진의 학설은 공인됐으며 1977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53개의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1천여편에 이르는 학술논문과 20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대한화학회 명예회원에 추대
프리고진은 잉크가 퍼지는 현상과 같은 비가역성이 시간에서도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감한 개념 혁신과 깔끔한 수학적 해석으로 비가역 현상에 대한 열역학적 연구를 통해 과학적 사고방식에 새로운 지평선을 열었다. 그러면서 과학 간의 대화, 그리고 과학과 인문학의 대화, 나아가서는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대화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그를 ‘열역학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열역학 제2법칙에의 도전, 여러 분야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종합적으로 적용되는 학설을 제시함으로써 이뤄진 학문 분야 간의 대화, 뉴턴의 결정론적인 기계론에 대한 도전, 이로 인해 야기되는 필연과 우연의 대립을 통한 ‘두 문화’ 권의 새로운 대화, 과학이론에 포함된 가역적 시간의 개념과 일상생활을 통해 느끼는 시간의 차이에 대한 대담한 통찰. 이로 인해 자연을 관찰하는 인간을 재조명하게 되고 인간과 자연과의 새로운 대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프리고진의 학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리고진은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다. 그는 수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킨 현대의 사상가이자 개혁주의자이며 또한 혁명가이다. 그가 주장하는 비가역적인 시간의 미시적인 근원이 밝혀지면 그야말로 양자역학의 탄생이래 물리학에서의 최대 과학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더 원천적으로 1686년 발표된 뉴턴의 학설 그 자체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고진이 집필한 대표적인 교양서적은 철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이사벨 스텐저스와 공동으로 집필한 ‘혼돈으로부터의 질서’(Order Out of Chaos)이다. 이 책은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앨빈 토플러가 ‘과학과 변화’라는 제목으로 서문을 썼으며 1984년에 출간되자마자 삽시간에 전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됐고 한국어를 위시해 16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1996년 5월 프리고진은 대한화학회 창립50주년 기념 국제화학학술대회에 초청돼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학술강연(시간, 혼돈, 그리고 자연의 법칙), 기념강연(과학과 예술에서의 창조성), 그리고 ‘카오스: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제목의 공개강연을 했으며 대한화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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