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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피아 빛의수련 - 23. 은둔, 종말, 역학

인터코스 | 2001.07.26 09:01 | 공감 0 | 비공감 0
****************은둔, 종말, 역학에 관하여***************
 
`진정한 수련이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삶을 어떻게 하면 풍요롭게 하고, 더 나아가 남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진정한 수련이라 할 수 있겠다. 진정한 수련이란 이러한 것을 찾는 것일 진데, 많은 사
람들이 수련이란 것에 대해 왜곡되게 생각하여 신비적인 것을 추구하고, 초능력이 생기
고, 물위를 걷고, 호풍환우하는 식으로 엄청난 능력을 터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
가 많다.
 
또는 아예 이러한 신비적인 현상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수련은 나와 남
의 경계가 없는 철학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은 많은 의식의 변화로 생활수련을 주창
하는 수련법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나, 전래의 우리 나라의 많은 수련법이 사회와 나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고, 나와 남을 구분하여 사회현상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
로지 나의 깨달음이나 나의 도만을 추구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로부터 선도니 하는 수련법들이 은둔하면서 맥을 유지해온 탓도 있지만 이와 같은
심심산천에 은둔 지향적인 수련법들이 과연 민족이나 국가사회에 진정으로 일익을 담
당하는 것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나와 국가, 나와 사회를 별개로 생각하여 국가가 어떻게 되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관심이 없고, `몇 년이 지나면 큰 기운이 한반도를 뒤덮고 머지않아 한반도가 세계의 중
심 국가가 될 것이다. 88년도에는 태극모양이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 하는 것들이 과연
나와 남의 경계가 없는 철학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도 의문스럽다.
 
`수련인은 현실을 직시하고 개개인의 능력을 키우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
라 하겠다` 현실은 경제가 멕시코의 전철을 밟게 되었느니, 이대로 가다가는 후진국으
로의 전락을 면치 못한다느니 하는데, 막연히 한반도는 머지 않아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이며 엄청난 기운이 밀려오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실제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능력을 키우고 항상 자신감 있게 국가 경쟁력
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설령 엄청난 기운이 한반도로 밀려온다고 할지라도
그 기운을 받아들일 능력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만 생길 것이다.
 
전에도 언급을 했지만 기운이 강한 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안에 담긴 정보의 질이 중요한 것이다. 국가단위도 마찬가지다. 국민 개개인이 최선을
다해 국가 경쟁력을 키워나감으로써 그런 기운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부정부패와 비리 등으로 썩은 사회 곳곳을 보면서도 `너희는 그래도, 나는 신선이다`라
는 식으로 앉아서 막연히 과거에 집착하고, `일본은 과거에 우리가 키워 줬다. 미국은
조만간 어떨 것이다` 라는 착각 속에서 수구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그것은 분명 수련의
역기능이다.
 
이러한 수련인의 자세는 동양 철학의 상당 부분이 은둔이라는 것으로, 그리고 개인적이
고 축소지향적인 것으로 해석이 되다보니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우리 민족이 우리 나
라가 우수하다는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현실은 경제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에 준하고 문화적으로는 미국의 식민지에 준하는 데도 그들은 조만간 우
리보다 낮은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는 것은 자기 기만이며 자가 당착에 빠지게
되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과거에 집착해서 `한 때 우리 나라는 만주 벌판을 호령했고 일본도 사실은 우리 땅이
다.` 라고 한다면 근래에 우리 나라와 만주벌판까지, 중국과 대만까지 동남아시아 전역
을 지배했던 일본의 자부심은 어떻겠는가?
 
솔직히 현실은 일본의 경제적인 식민지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고 국가 경쟁력과 사회를
바꾸는데 동참해서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우리의 할
일이다. 문화적으로도 국민 개개인의 철학의 부재나 교육의 문제 등 에 당면한 현실을
등한시 한다면 깨달음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학생 시절은 철학적 기반을 닦을 때이다` 고등학생이나 중학생까지 현실 도피적으로
이런 수련을 한다고 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아직 주관이 서있지 않고 철학적으로 성숙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왜곡되게 보면 신비적이고 아주 환상적인 이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공부는 자연히 멀어지고 진정으로 배워야할 나이에 집이나 도장에 앉아
서 명상이나 하고 사회현상에는 완전히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정말 건강이 나빠서 건강차원에서 그렇다면 조금 이해가 간다. 그러나 고등학생은 철학
적 기반을 닦을 때이지, 은둔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마치 개인적 사명인 것처럼 생각한
다면 그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하겠다.
 
일반 수련단체 중에서는 철학적 기반이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잘못 왜곡되게 이런 것에
길들이는 것 또한 문제이다. 단순히 수험생이 하면 학습효과가 높아진다느니 또는 부의
창출 수단으로 이런 것을 권고한다면 안된다.
 
축소지향적이고,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수련자체가 역동적인 사고를 불가능하
게 만들 수 있고, 항상 수구적이고 과거에 집착하고, 전생의 업이나 따지고 있고, 운명
을 바꾸기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여 체질에 맞는 음식이나 찾고 하는 등 그러한 것은 진
정한 수련이 아니다.
 
`기`라는 정보에너지를 이용해서 종교화를 하는 단체들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
아가서 정보에너지(氣)를 이용해 부를 쌓으려는 단체들 또한 있어서는 안된다. 단체들
의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일정 정도 이상의 치부는, 그리고 수
동적이고 은둔 지향적인 수련법의 만연은 국가 전체로 봐서 득이 될 수가 없다.
 
국민 전체가 과거에 집착하고, 역학이나 따지고, 조상 탓이나 하는 것은 성장과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 `진정한 수련은 운명을 개척하고 실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
지 은둔이나 도피는 나약한 생각이다`
 
진정한 수련은 운명을 개척하고 더 나아가 남들에게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영향을 미치
는 존재가 되어 생활 가운데 명상이나, 잠시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찾는 것이다. 이처럼
실생활 속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지 도피한다는 생각은 나약한 생각이다. 깨달았다는 것
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떠한 문제 인식은 하는데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가나 민족, 너와 나를 구분 짓는 폐쇄적인 수련 시스템 안에서는 단지 기운이 온다는
것을 앉아서 기다린다. 하지만 감이 떨어질 때를 기다린다고 감이 입에 떨어지지 않는
다. 즉 나와 남의 에너지를 구분 짓고 선천이니 후천이니 따지는 것은, 그리하여 수련으
로 자기의 운명하나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는 위대한 개인 없이는 결코 위대해 질 수 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수련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능력을 배가시켜서 인류사회에 기
여할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도의 실현이 아닐까한다. 수련을 통해 나약한 몸과 마음
이 항상 건강하게 유지되고, 누구든지 곁에만 있어도 모두에게 편안한 에너지를 방출하
고 있다면, 그리고 항상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면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다.
 
`탄생과 죽음은 변화의 한 과정 일 뿐이다.. 종말이란 것도` 장자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
었을 때도 슬퍼함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탄
생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한 과정일 뿐이다.
 
거시적으 로 보면 지구의 종말이란 것도 결국은 우주적인 흐름일 뿐이고 태양계나 은하
계의 탄생과 소멸도 결국은 우주에서 보면 자연스런 변화의 한 과정일 뿐이다. 일부 종
교에서 보면 인류는 종말로 가고있고 언젠가는 종말이 올 것이라고 말을 한다. 마치 빨
리 종말이 왔으면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말을 한다. 즉 `우리는 종말이 와도 대안이 있
으니 너희들도 빨리 대열에 합류하라`는 식의 말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마음속
에는 너희들은 안 된다는 식의 분별과 저주가 다분히 들어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현 위 치가 즉, 그런 말을 하는 현재의식의 세계가 곧 지옥임
을 모른다. 종교들이 말하는 즉 역대 성인들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구원이나 사랑엔 미
움이 없다. 마음속에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곧 그것은 수련이 덜 되었다는
얘기이다.
 
종말을 핑계로 자기 최면에 걸려서 재산의 전부를 날리는 사람도 있고, 길에 나가 남이
약해졌을 때 교묘히 파고 들어가는 종교도 많이 있다. 종교의 만연이나 신비주의적인
것의 만연은 사회가 불안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말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취해야 한다. 종말은 곧 새로운 시작이다. 무시무
종 (無始無終), 우주는 시작과 끝이 없다. 시작은 곧 끝이고, 끝은 곧 시작인 것이다. 이
처럼 탄생과 죽음은 새로운 변화의 한 신비이며 기적이라 하겠다. 그런 것을 종말이니
어쩌니 하면서 가뜩이나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사이비적 성향
을 띠고, 혹세무민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그러한 종말론에
현혹되어서는 아니되겠다.
 
`역학은 보는 것이 아니고 바꾸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학을 한다는 사람 또한 본
인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지구에서 태어난 시간이나 에너지 흐름에 안주하려 하면
운명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태양계나 은하계를 하나의 점으로 하나의 먼지로 생각하고 수련을 한다면 비교적 쉽게
바꿀 수가 있다. 왜냐하면 에너지가 지구의 천지인이나 태양계의 각도에서 비롯되지 않
고 우주의 거시적인 에너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구의 에너지 흐름에 영향을 받다
가 보다 더 거시적인 에너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지구적 에너지 흐름의 영향에서 벗
어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항상 선한 마음, 항상 베푸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만 있다면 운명은 비교적 쉽게
바뀐다. 역학은 보는 것이 아니고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기간 많은 수련을 했
다는 사람도 자기의 운명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쉬워도 바꾸려는 의지는 거의 없
다.
 
바꾼다는 것은 운명을 새로이 창조하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과거 기억속의 나
약한 내 모습에 구애 받지 말고 수련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삶을 디자인하고 조건없이
마음껏 창조를 해나갈 때 그것은 가능하다.
 
`인간 본연의 모습은 성경에 있는 말처럼 들에 핀 백합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그렇게 집착 없이 부지런하게 살며 맑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다. 열심히 살면 부족함이
없고 거짓이 없으면 마음이 평안 하다. 삶 중에서 이보다 더 좋은 삶은 없으며 더 이상
인간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세상 속에 만연하고 있는 탐욕의 늪에 빠져 있
다는 증거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맑으면 세상과 하나되는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이
치대로 바라보는 밝은 지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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